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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새벽 알고리즘 — 장편 4장 본문
새벽 2시 41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곡선이 하늘을 눌러 둔 듯 낮았다.
도매상가의 셔터들이 절반쯤 올라간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며, 재봉틀 바늘들이 먼저 깨어났다. 소음은 일정했고, 그 일정함이 코드였다. 사람들은 그 위로 각자 한 줄씩의 변수를 얹었다.
도윤과 연두색 우비는 평화시장 뒤편 골목에서 시작했다. 마네킹들이 자정 회의를 마친 뒤였다. 하얀 몸들이 서로를 스캔하고, 직물과 실루엣, 주머니 깊이를 서로 교환해 최적의 조합을 합의했다. 오늘의 규칙이 이미 시장 앱 상단에 떠 있었다.
“질문은 명사로 시작한다. / 용서의 단위는 ‘다음’. / 오늘은 문장의 길이를 탓하지 않는다.”
규칙이 붙자 가격표의 문장들이 달라졌다.
기존: “데일리로 편해요!”
갱신: “용도: 통근. / 계절: 장마. / 다음: 회의.”
수사는 빠지고 명사가 남았다. 설명 대신 사양. 변명 대신 명세서.
1층 복도 끝, 취향 엔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천장 레일에 걸린 옷걸이들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울리며 앞질러 나갔다. 엔진은 오늘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옷이 사람을 고르는 중이었다. 옷걸이에 달린 얇은 디스플레이가 낮은 목소리로 독백했다.
— “사용자 후보군: 수면부채 3시간, 발목 붓기 12%, 빈 쉼표 소지.”
연두색 우비가 도윤을 곁눈질했다. “발목은 당신.”
도윤이 마포대교의 붓기를 떠올리며 웃었다. 빈 쉼표까지 간파하는 옷의 안목이 얄미웠다.
시장 한켠, A/B 테일러들의 테이블이 줄지어 있었다. 같은 바지, 다른 밑단. 같은 셔츠, 다른 칼라 각. 사람들은 피팅룸 대신 거울 앞에서 서서 눈썹만 올렸다 내렸다. 표정의 근육 움직임이 피드백 신호였다. 테일러가 중얼거렸다. “A안 이마 주름 +7, B안 입 꼬리 +12. 오늘은 B.”
바늘이 한 번, 정확하게 방향을 틀었다.
패턴은 결과를 기억했고, 결과는 즉시 패턴을 수정했다. 아침 뉴스보다 빠른 속도였다.
연두색 우비가 포대를 들어 올렸다. 안에는 금속 쉼표 단추들이 반짝였다. “요약관 업무 겸직이라서요. 말 많은 옷에 다는 단추.”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 많은 옷이면 체크, 스트라이프, 로고 빽빽. 한 줄 덜기 좋죠.”
단추는 진짜로 문장을 덜어냈다. 달아준 즉시, 셔츠의 억양이 낮아졌다. 로고가 둘 셋 사라지고, 체크의 간격이 넓어졌다. 옷이 한 박자 늦게 숨을 쉬었다.
복도 반대편에서 사입 삼촌들의 손수레가 밀려왔다. 그들 중 몇은 알고리즘을 속이는 데 능했다. 오짜 스티커—규칙을 비스듬히 만드는 작은 오탈자—를 가격표에 살짝 붙여 수요를 부풀렸다.
“DAILY → DEITY.”
“COTTON → COTON.”
철자 두 개만 비틀어도 그래프가 들썩였다. 오늘은 경복궁에서 활자찌꺼기를 긁어 간 고양이 활판공 덕에 오탈자 검출 민감도가 올라가 있었다. 천장 카메라가 미세하게 깜빡였고, 바람 API가 골목 끝에서 후- 불었다. 스티커들이 톡, 톡 떨어졌다.
삼촌들이 혀를 찼다. “오늘은 바람이 빠르네.”
도윤은 프롬프트 드레이핑 존 앞에 섰다. 재단사가 말 대신 종이 태그를 내밀었다.
“명사로만 적으세요.”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쓰기 시작했다.
— 목적: 면담.
— 장소: 사무실 외.
— 시간: 비 온 뒤.
— 다음: 화해.
추상은 금지되어 있었다. 형용사는 엔진이 알아서 채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일단 맥락의 골격을 명사로 세우는 것.
재단사는 태그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마네킹이 움직였다. 살 없는 어깨가 아주 조금, 인간처럼 망설이는모양을 했다. 마네킹이 주변에서 천을 끌어다 입었다. 레인코트의 밝기를 한 톤 낮추고, 포켓의 깊이를 손바닥 두 개 분량으로 바꾸었다. 왼쪽 안감에 숨은 지퍼 포켓—비에 젖지 않는 메모의 자리—가 생겼다.
디스플레이가 점멸했다.
— “선택: 후보자 #031. / 이유: ‘다음’ 항목의 우선순위가 높음. / 리스크: 말길이 불규칙(오늘 면책).”
연두색 우비가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시장도 오늘 규칙을 즐기네. 문장 길이는 탓하지 않기.”
천장 스피커에서 낮은 경고음이 났다. 수요 왜곡 시그널. 누군가 ‘이별 후’ 태그를 대량으로 인입했다. 엔진은 즉시 방화벽을 올리고, 옷들이 집단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이별 후”는 동대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이야기였다—인간에게도, 상품에게도.
시장 중앙의 전광판에 문장이 떠올랐다.
“원인.”
명사 질문이었다. 전광판은 광고 대신, 오늘의 첫 질문만 반복했다. ‘왜 그랬어요?’ 대신 ‘원인.’
과장된 슬픔은 조금 주춤했고, 그 틈에 조용한 길이 열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카트 바퀴들 사이로 나와 레일 아래에 앉았다. 양자 꼬리 하나가 뒤집혀, 패턴의 가장 단순한 해결을 가리켰다. 엔진이 그 방향으로 설정을 돌렸다. 레이스 대신 평직, 슬로건 대신 공백, 과장 대신 봉제선.
“사입, 출하!” 누군가 외쳤다. 레일이 속도를 올렸다.
도윤의 레인코트가 그에게 다가왔다. 옷걸이가 손목에 닿는 순간, 피팅 대신 합의가 체결되었다. 작은 전자봉인이 ‘딸각’ 소리를 냈다.
연두색 우비가 계산대로 그를 안내했다. 영수증은 종이가 아니었다. 투명한 얇은 판에 오늘의 패치 노트가 새겨졌다.
동대문 새벽 패치 노트 — 4:13AM
- fix: 자책 루프 과열 → 밑단 여유분 +1cm
- add: 빈 쉼표 단추 1ea (말끝 지연 0.3초)
- tune: 방수 레이어 소음 감소 (회의 전 침묵 보장)
- note: ‘다음’ 우선 순위 유지. 불필요한 과거 캐시 자동 비움.
계산대 직원(겸 면역 로그 관리자)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늘의 면세 품목은 뭔지 아시죠?”
도윤이 규칙을 떠올렸다. “물 한 모금, 타인의 수고에 대한 짧은 고개.”
직원이 웃었다. “정답. 그래서 이건 무료.”
그는 종이컵을 건네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도시의 면역계는 이렇게 작동했다—큰 담론 대신 작은 예의의 캐시 미스.
복도 끝에서 다시 한 번 경고음. 가짜 수요 봇이 골목에서 뛰었다. 캔버스 토트백 수백 개를 한 번에 ‘좋아요’로 밀어 올린 흔적. 엔진이 대응했다. 좋아요의 단위를 발걸음으로 환산하는 새 규칙이 발동됐다. 클릭이 아니라 이동. 봇은 발이 없었다. 그래프가 산음처럼 가라앉았다.
“시장, 업데이트 빠르네.” 연두색 우비가 혀를 찼다.
“우연이 책임을 주니까요.” 도윤이 답했다. 오늘 경복궁에서 배운 말이 여기서 또 살아났다.
밖으로 나오는 길, 새벽 공기가 바뀌었다. 장대비가 가까웠다. 우산을 펴면 각자 다른 이야기가 재생될 터였다.
도윤은 레인코트를 어깨에 걸쳐 봤다.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살던 문장을 다시 입는 기분—명사로 시작하는 하루, 다음으로 건너가는 용서, 길이를 탓하지 않는 대화.
연두색 우비가 그의 소매를 툭 건드렸다. “오늘은 당신이 덜 말하고 더 걷는 날이네요.”
“원인.” 도윤이 웃으며 한 단어로 대답했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명사로 시작한 농담은 수식 없이 정확했다.
새벽 4시 38분. DDP 외벽에 작은 글자가 한 줄 흘렀다.
— 오늘의 시장 규칙: 취향은 설명이 아니라 보폭.
사람들의 걸음이 미세하게 정렬되었다. 같은 속도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속도를 비난하지 않는 합의가 다시 살아났다.
천장 레일이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쉬었다. 알고리즘은 옷들을 창고로 돌려보내며, 낡은 패턴 몇 개를 조용히 퇴역시켰다. “내일은 새로운 선.”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시장을 빠져나와 동틀 녘의 가벼운 비에 걸음을 내디뎠다. 우산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틀었고, 그 이야기들이 겹치는 지점마다 도시가 잠깐 투명해졌다. 그 틈으로, 다음 장면의 문장이 보였다—연남 골목의 화분들이 잎맥으로 말을 번역하는 모습, 혹은 구로의 굴뚝에서 0과 1의 얇은 연무가 새어 나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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