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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eoul of Singularities

감정 세관의 노동일지

DATAUNION 2025. 8. 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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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섯 시, 강남의 전광판들이 꺼져 있다. 광고가 사라진 지 한 달째. 유리 빌딩의 표면은 이제 단순한 하늘색을 반사한다. 도시가 거울이 되자, 출근길 사람들의 얼굴이 더 또렷해졌다.
나는 마포대교 위의 감정 세관으로 출근한다. 내 일은 간단하다. 통행객이 심리 스캐너를 지나갈 때, 기계가 뱉은 수치 옆에 말을 붙여 준다. “현재 불안지수 73. 오늘은 돌보기 필요.” 그 말 한 줄이 통과의 열쇠가 되기도, 보류의 무게가 되기도 한다.

기계는 표정을 읽는다. 나는 간격을 읽는다. 말과 말 사이. 눈동자와 눈동자 사이. 지각한 대학생이 달려오다 멈추며 묻는다.
“죄송한데, 그냥 통과하면 안 될까요?”
“오늘은 안 돼요. 심호흡 세 번, 여기 앉으세요. ‘괜찮다’ 대신 ‘괜찮아질 거다’라고 말해보죠.”
그는 어색하게 따라 하고, 수치가 73에서 61로 내려간다. 스캐너의 바가 초록으로 바뀌자, 그는 감사 인사를 하고 뛰어간다. 내 기계는 숫자를, 내 손은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이것이 내 노동이다. 의례 같고, 하지만 아주 구체적인 몸짓.

점심 전, 경복궁에서 연락이 온다. 그림자 프린터가 오류를 냈다는 보고. 프린터는 사람의 하루를 그림자로 출력한다. 그날의 무게와 방향, 늘어난 만큼의 관계선, 줄어든 만큼의 고립, 모두 검은 실루엣의 두께로 기록된다.
관리인 민서가 사진을 보낸다. 고령 남자의 그림자. 그런데 그림자가 주인 대신 가방을 따라가고 있다. 사람은 제자리에 있고, 그림자가 끌리는 쪽은 낡은 서류가방이다.

“오늘 오후에 볼 수 있어?” 민서가 묻는다.
“교대 후에 갈게.”

정오 무렵, 동대문에서 새벽 알고리즘 시세 점술 방송이 올라온다. 자동화된 상거래 시스템이 하루치 변동을 예언하는 목소리를 쏟아내면, 사람 점술가가 그것을 사람의 말로 풀어준다.
“오늘의 권장 감정: 절제. 단, 오후 세 시 이후에는 약간의 무모함 허용.”
청계천 바람이 숫자를 머리칼처럼 흔든다. 상인은 더 이상 물건 대신 사연을 진열한다. “이 손수건은 화해에 적합.” “이 모자는 잊기를 돕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도구를 팔지 않는다. 도구가 만들어낼 관계의 방향을 판다.

오후, 세관으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사진 속 그 고령 남자다. 원래라면 스캐너를 통과해 한강을 건너면 될 일. 그런데 기계가 반복해서 보류를 띄우는 중이다. 과다 근심. 통행 시 사고 가능성 18%. 보호자 동반 권장.

“오늘은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가 말한다. 목소리는 평온하다. 눈 밑엔 하얀 피로가 굳어 있다.
“왜죠?”
“광고를 붙여야 해서요.”
그가 서류가방을 연다. 안에는 종이 광고들이 잔뜩 들어 있다. 더 이상 쓸모 없는 것들. QR도, 추적 픽셀도, 입찰 알고리즘도 붙어 있지 않은, 종이의 냄새만 있는 광고.
“광고판은 꺼졌습니다.” 내가 말한다. “강 건너에도요.”
“압니다. 그래서 붙여야 합니다.”

기계는 그의 수치가 내려오지 않자 통행을 막는다. 나는 예외 절차를 생각한다. 정서 조율 의식—안내원이 동행하여 의례를 진행할 경우, 보류를 해제할 수 있다. 내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재량.
“같이 건너요.” 내가 말한다. “대신, 방식은 제 의식대로.”

우리는 연남동으로 먼저 들른다. 번역 식물이 있는 온실. 식물은 사람의 말과 숨을 받아 다른 말로 번역한다. 종종 사람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는 잎 하나를 따서 찻물에 띄운다. 잎맥 사이로 그의 말이 스며든다.
“왜 광고를 붙이려 하세요?”
잎이 속삭인다. ‘그는 떠나보내고 싶다.’
“무엇을요?”
‘일을.’

그는 젊을 때 거대한 네온 광고를 설계했다. 도시의 욕망을 하늘에 붙이는 노동. 전광판이 사라지고도, 그의 다리는 아직 매일 같은 시간에 강을 향해 걸어왔다. 가방은 그 시간의 무게였다. 프린터가 가방의 그림자를 먼저 출력한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럼, 같이 붙입시다.”
“무엇을요?”
“작별을.”

나는 그를 데리고 편의점 면역계로 간다. 편의점은 도시의 면역 시스템을 맡고 있다. 사람과 물건과 정보의 미세한 균을 걸러낸다. 나는 의식용 키트를 산다. 소독 젤, 스티커형 맥박 센서, 스트리밍 토큰 카드 한 묶음. 계산대의 로봇이 영수증 대신 의례 대본을 건넨다.
“이 부분을 삭제해도 되나요?” 내가 묻자, 로봇은 어깨를 으쓱한다.
“사람이 판단하세요.”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경복궁으로 향한다. 민서가 기다리고 있다.
“그림자가 계속 가방을 따라가.”
“의식으로 수정할 수 있어.” 내가 말한다. “한 번만 믿어줘.”

궁 안뜰 한편에 무속 OS 업데이트 베너가 깃발처럼 펄럭인다. 오늘 배포된 패치 노트엔 ‘망각 탭에서 연대 탭으로의 기본 전환’이 추가되었다고 적혀 있다. 잊는 대신 엮기. 도시가 배우는 속도는 인간보다 느렸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속도로 붙잡아 주어야 했다.

우리는 그림자 프린터 앞에 선다. 주석판을 열고, 스트리밍 토큰을 끼운다. 먼 지방과 해외의 친지들이 접속할 수 있도록 제사의 스트리밍 채널을 연다. 남자가 놀란다.
“제사는 아닙니다.”
“오늘은 하던 일을 보내는 제사예요.”
“그런 게 있습니까?”
“오늘부터 있습니다.”

의식은 이렇게 진행된다.

첫째, 동대문에서 새벽 알고리즘이 제시한 오늘의 권장 감정을 재생한다. 스피커에서 낮은 톤의 목소리가 흐른다. 절제. 그리고 약간의 무모함.
둘째, 번역 식물 잎을 찻잔에 띄우고 서로의 말을 번역해 마신다. 잎은 내 말에 ‘너도 떠나보내고 싶다’고 번역한다. 나는 놀라지 않는다. 사실이다. 내 일의 테두리, 안전한 안내원의 언어, 그 안에 갇혀 있던 숨을.
셋째, 편의점 면역계에서 산 스티커형 맥박 센서를 남자의 손목과 내 손목에 붙인다. 두 박동이 프린터에 동기화된다.
넷째, 무속 OS를 업데이트한다. ‘망각’ 탭 대신 ‘연대’ 탭. 잊지 않는 방식으로 내려놓기.
다섯째, 종이 광고에 한 줄씩 적는다. ‘오늘을 광고합니다.’ ‘이별의 사양.’ ‘노동 종료 세일.’ ‘관계를 새로 엮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프린터 옆 벽에 붙인다. 전기는 없지만, 바람이 읽는다.

민서가 프린터를 작동시킨다. 매끈한 벨트 위로 잉크 냄새가 돌고, 검은 막이 미끄러져 나온다.
이번엔, 그림자가 둘이다. 하나는 남자의 몸을 따른다. 다른 하나는 가방에서 벗어나 남자의 손을 향해 돌아온다. 두 그림자가 손을 맞잡는 곳에, 가느다란 세 번째 실루엣이 눈에 띈다. 나의 손.
민서가 숨을 들이쉰다.
“의식이 기록된 거야.”
“네. 단독 노동이 관계 노동으로 전환될 때, 프린터가 동행자의 손을 찍어.”
“언제부터?”
“오늘부터.”

우리는 그림자를 말려 접는다. 남자는 그것을 가방에 넣지 않고, 가슴 주머니에 넣는다. 가방은 가벼워 보였다.
“이제 강을 건너도 될까요?”
“예.” 나는 스캐너의 예외 절차를 입력한다. ‘인간 안내 동반—의례 완료’
장치가 초록을 띄운다.

한강 바람이 불 때, 우리는 다리 중앙에 멈춘다. 남자는 가방에서 종이 광고 몇 장을 꺼내 난간에 붙인다. ‘노동 종료 세일’의 모서리가 바람에 살짝 들린다. 그의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나는 물 아래로 눈을 내린다. 수면에는 꺼진 광고판 대신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사된다. 오늘 건너간 이들이 남긴 단정한 문장들. “괜찮아질 거다.” “오늘은 절제.” “약간의 무모함.”
그때, 남자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당신은 무엇을 보내고 싶은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내 손에 달린 맥박 스티커를 뗀다. 맥박은 기계에서 사라지고, 내 귀 속으로 돌아온다. 꽤 든든한 소리다.

해가 저물자, 강남의 유리벽은 빈 하늘을 계속 비춘다. 광고 대신, 저녁 놀. 나는 세관으로 복귀해 통행 기록을 마친다. 마지막 항목에 ‘의례 동반’ 체크. 평가 항목에는 적는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을 좁힘.”

퇴근 길, 민서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그림자 프린터 로그에 네 이름이 떴어. ‘통행 서사자(臨時).’
나는 웃고 말았다. 호칭 따위 크게 중요치 않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 작게 울린다. 통행을 서사로 만든 사람. 오늘 하루의 노동을 정의해 주는 단어. 의례가 곧 노동인 도시의 작은 칭호.

집으로 가는 길, 연남동 온실 앞을 지나며 번역 식물에게 속삭인다.
“나는 내 언어의 경계를 떠나보내고 싶어.”
식물이 잎맥으로 답한다. ‘너는 더 오래 듣고 싶다.’
정확하다. 더 오래 듣고 싶다. 건너는 사람들의 사연, 그들의 가방이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중력, 전기가 꺼진 광고판의 넓은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 넣는 우리의 조그만 문장.

밤, 방 안에서 창을 연다. 멀리 동대문 쪽에서 새벽 알고리즘의 예고편이 들린다. “내일의 권장 감정: 유예.” 기다림을 배우라,는 뜻일까.
나는 오늘 가져온 의식 대본을 책상 서랍에 넣는다.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강을 건너려 할 것이다. 프린터는 또 다른 그림자를 뿜어낼 것이다. 어떤 날은 내 그림자도 오류를 낼지 모른다. 그때는 누군가의 손이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줄 것이다. 의례는 그렇게 서로를 작업한다. 끝도, 시작도 없이.

불을 끄자, 방 안에 작은 화면이 켜진다. 제사의 스트리밍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 남자의 채널이다. 해외의 누군가가 댓글을 단다. 광고판에서 본 당신의 불빛을 기억합니다.
남자는 짧게 답한다. 오늘 보내드렸어요. 당신이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 대화 위에, 소리 내지 않고 문장을 덧붙인다. 노동 종료. 관계 시작.
그리고, 한밤중의 서울이 그 문장을 천천히 따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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